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니발 바르카 (문단 편집) === 유년기 === 한니발은 BC 247년에, 카르타고의 [[식민지]]였던 [[시칠리아]]에서 태어났다. 9살에 아버지 [[하밀카르 바르카]]를 따라 [[스페인]]에서 생활했다. 그러나 하밀카르는 [[제1차 포에니 전쟁]] 이후 [[히스파니아]]에서 사망했다. 하밀카르의 뒤를 이어 그의 전우이자 한니발의 매형이었던 [[하스드루발]][* 잘생긴 하스드루발(Hasdrubal the Fair). 한니발의 동생 하스드루발과는 [[동명이인]]이다.]이 [[히스파니아]]의 사령관이 되었다. 한니발은 그의 휘하에서 군 경력을 쌓았다. 리비우스의 사료에서 서술된 그의 일생은 위와 다르다. 이에 따르면, 한니발은 하밀카르와 떨어져 카르타고 본토에서 생활했다. 그의 아버지는 1차 포에니 전쟁과 히스파니아 식민 전쟁 때문에 [[히스파니아]]에 머물렀다. 한니발이 히스파니아로 향한 것은 이후 매형 [[하스드루발]]로부터 초청을 받은 이후였다. 이 초청 서신은 카르타고 원로원에도 보내졌다. 이때 한노는 지역 사령관들이 자신의 자식들에게 군대를 세습한다며 한니발의 파견에 반대했다. 그는 한니발이 다른 젊은이들처럼 카르타고에서 관료 경험을 먼저 쌓아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. 그러나 한노의 발언은 [[원로원]]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. 다른 의원들은 이를 남의 가정사(?)에 대한 주제넘은 참견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. 한니발은 예정대로 히스파니아로 건너가 군 경험을 쌓았다. 다만 리비우스의 사료는 오류라는 학설이 정설이다. 한니발이 후일 [[자마 전투]]에서 패배하고 카르타고로 돌아올 때 이런 말을 했다. "내가 도시를 떠날 때가 (하밀카르가 살아 있었던) 아홉 살이었는데, 서른여섯 해가 지나서야 돌아오는구만."[* Liv.30.37] 즉, 한니발은 BC 238년 하밀카르와 함께 히스파니아로 떠난 후 BC 202년이 되어서야 돌아온 것이다. 한니발은 곧 27세의 젊은 나이로 [[히스파니아]] 주둔군의 사령관이 되었다. 이는 그곳으로 한니발을 초청했던 그의 매형 하스드루발이 [[켈트족]]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이다. 그래서 다소 급하게 한니발은 하스드루발의 직위를 세습했다. 한니발은 이미 병사들부터 인망이 높았다. 용맹, 열정, 성실성을 갖춘 데다 그의 아버지 하밀카르를 빼닮았기 때문이다. >그의 지휘하에 병사들은 항상 가장 힘차게 돌격하고, 사기가 충천했다. 무모할 정도로 위험을 감수하기도 했던 한니발은 일단 위험이 닥치면 뛰어난 전략적 능력을 발휘했다.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칠 줄 몰랐고 지독한 더위나 혹심한 추위도 쉽게 견딜 수 있었다. 미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먹고 마시지 않았으며, 단지 신체의 활력을 유지할 정도로만 먹고 마셨다. …… 말 위에서든 지상에서든, 전사로서 그를 대적할 사람이 없었다. 공격할 때는 항상 앞장섰으며, 전장을 떠날 때는 가장 마지막에 떠났다. 그의 미덕들은 가히 이 정도였으며, 실로 위대했다. 하지만 결점들 또한 그에 못지 않았다. 비인간적인 잔인성, '카르타고적 배신'을 넘어서는 배신 행위, 그리고 진실과 명예, 종교를 완전히 무시하고, 서약의 신성성과 다른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모든 것을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 말이다. >---- >리비우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